2018 특별상 수상자
권오곤
약력
서울대학교 법 학사
하버드대학교 법학 석사
제19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민사지방법원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
대구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법원행정처 법무·기획담당관
대법원 재판연구관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
언론중재위원회 경남중재부 위원장
수원지방법원 ·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부장판사
헌법재판소 연구부장
서울지방법원 ·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
구유고슬라비아국제형사재판소(ICTY) 상임재판관 · 부소장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회 위원장
대법원 형사사법발전위원회 위원장
제15대 한국법학원 원장
법무부 북한인권 법률자문단 위원장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국제형사재판소(ICC) 당사국총회 의장
수상이유
권오곤 재판관은 유엔 산하 국제기구 소속 재판관으로서 유고, 보스니아, 세르비아 등의 전범에 대한 국제법상 기념비적 판결을 함으로써 세계무대에서 국위를 선양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제적 법률가이다. 판사로 근무하던 중 그는 2001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관으로 선출되어 15년간 활동하였으며, 부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에는 재판관 및 소추관 선출, 재판소 운영 감독, 예산 결정, 로마규정 및 소송규칙 개정 등의 권한을 가진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국제형사재판소(ICC) 당사국총회 의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권 재판관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였으며, 제19회 사법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하였고,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수료하였고. 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국내 법원에서 주요 요직을 거친 그는 재판관으로 선출된 직후부터 구 유고연방의 대통령이었던 밀로셰비치, 7천명 이상을 살해한 유고전범의 핵심인물인 세르비아계 군인 포포비치, 보스니아 내전의 핵심인물인 카라지치 등 일련의 전범 재판에 참여하였다. 특히 재판장으로 참여한 카라지치에 대한 판결은 집단살해죄, 공동범죄집단 및 상급자책임 등 뉘른베르크 판결 이후 이론적으로 현격하게 발전하여 온 국제형사법 법리의 정수들을 실제 판결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판결로 국제법상 기념비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권 재판관은 2007년부터 옥스퍼드 대학의 국제형사법 잡지(Journal of International Criminal Justice)의 편집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2010년부터 2011년까지는 국제형사재판소의 재판관 선거와 관련하여 재판관 후보의 자격을 검증하기 위하여 국제형사재판소 관련 NGO들의 연합체에서 창설한 독립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5년간의 ICTY 재판관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로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초대 국제법연구소 소장을 맡아 국제소송사례 연구나 법률자문 등 수행하고 있으며, 판사, 검사, 변호사, 법학교수 등을 아우르는 우리나라 최대, 유일의 법률가단체인 한국법학원의 원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수상소감
존경하는 송금조 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장님, 진애언 대표님과 재단 이사님들, 김도연 총장님을 비롯한 경암상위원회 위원님들, 내외 귀빈 여러분.
단순히 “권위 있다”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우리나라 최고의 학술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경암상 특별상을 수상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학자라기보다는 법률 실무가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래서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현역으로 활발하게 학술적 연찬을 계속하는 학자와 전문가”에게만 수여된다고 하는 경암상을 받기에는 여러 가지로 모자라기에, 부끄럽고 송구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국제재판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법치주의의 정착과 법률문화의 발전에 기여하라는 격려의 취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이를 위해 한층 더 노력하겠습니다.
국가 사이의 경계를 둘러싼 분쟁이라든가, 국가 사이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등과 같은 국가 간의 분쟁을 중재하거나 재판하는 제도는 일찌감치 있어 왔습니다만, 국가의 책임과는 관계없이, 국제적인 만행을 저지른 개개인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는 국제형사재판 제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있었던 뉘른베르크 재판과 도쿄 재판이 처음이었습니다. 그 후 50년의 세월이 지나, 제가 몸담았던 유고슬라비아 전범재판소와 르완다 전범재판소를 시작으로 해서, 동티모르 특별재판소, 시에라리온 특별재판소, 크메르루지 특별재판소, 코소보 특별재판소 등 임시재판소들이 우후죽순 같이 생겨났고, 결국에는 상설 재판소인 국제형사재판소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가 설립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침 올해는 ICC의 설립근거가 된 로마규정 (Rome Statute)이 채택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이제 이러한 국제형사재판 제도는 국제 법률질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추세는, 만행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관행을 종식하여야 하며, 항구적인, 지속 가능한 평화는 정의의 실현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하는 자각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100여 년 전 당시의 고등검찰청에 해당하는 평리원의 검사였던 이준 열사께서 헤이그에 가셨을 때 만국평화회의에 들어가지 못하셨던 것처럼 만국평화회의의 결의에 의해서 지어진 평화궁 (Peace Palace)에 입주하고 있는 국제사법재판소 (ICJ)에 오늘날에도 한국재판관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 약간은 낭만적인 감성에 의해서 비롯된 저의 선택이 그 이후 15년간의 국제재판소 재판관 생활까지 이어지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세계가 지켜보던 역사적 재판을 수행하며, 전례가 없는 새로운 분야에서 합리적인 선례를 남기려 노력했던 것, 최초로 국제재판소 소장단의 일원으로 재판소 운영에 관여했던 것, 처음에는 저 혼자뿐이었으나, 이제는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이 많이 있게 되었다는 것, 상설 재판소인 ICC의 운영에 관하여 정치적 감독 책임을 맡고 있는 당사국 총회 의장직도 수행하게까지 되었다는 것 등에 약간이나마 자긍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제 “국제화”는 필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국가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국제형사재판소가 관할권을 행사할 수 길이 열려 있는 것과 같이, 국제법은 이미 우리 곁에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의 전통적인 형사법으로는 알지 못하던 “인도에 반하는 죄 (crime against humanity)”와 같은 국제 형사법상의 범죄를 인정하고, 이에 대하여는 국제법에 따라 공소시효를 배제하고 있는 것이 그와 같은 사례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제화, 세계화를 위해서는, “세계 속의 한국” 그리고 “한국 속의 세계”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속의 한국”을 위해서는 우리 법조인이 좁은 국내에만 관심을 가지지 말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 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좀 더 많이 국제무대에 진출하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더욱 많은 젊은 법조인들이 국제무대에 나아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속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법제도가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게 선진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계 구석구석의 실정을 내 집 들여다보듯이 훤히 알 수 있게 된 오늘날의 지구촌 사회에 있어서, 한 나라의 선진화 여부는, 그 나라의 경제지표 보다는 그 나라의 인권 상황과 그 사법제도의 투명성 및 예측가능성에 달려 있습니다. 마침 우리나라는 영미법과 대륙법을 적절히 조화시킨 선진적인 법제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 제도 운영의 실제에 있어서는 그에 걸맞은 실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핵심 가치로 삼고 있는, “법의 지배”, “공정한 재판”, “무죄 추정의 원칙”이란 것들이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우리의 사법제도 운영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하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저에게 감당키 어려운 영예로운 상을 주신 경암교육문화재단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하여 엄청난 결단을 해 주셨던 경암 송금조 이사장님께 이 자리를 빌려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아버님과 어머님, 늘 보살펴 주신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언제나 제 옆에서 힘이 돼 주었던 제 아내에게 평소에 다하지 못한 감사의 말씀을 이 자리를 빌려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