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특별상 수상자 

승효상


약력


서울대학교 학사(건축학)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건축학)
공간연구소 대표이사
이로재(履露齋) 대표
영국 런던대학교 객원교수
미국 건축가협회 명예회원
파주 출판도시 코디네이터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서울건축학교 운영위원
서울특별시 총괄건축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운영위원장
동아대학교 석좌교수


수상이유


승효상 교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비엔나 공과대학에서 수학했다. 15년간의 김수근 문하에서 마산 양덕성당, 경동교회 등을 설계했다. 1980-1982년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에서 수학하고 귀국 후 1986-1989년 공간연구소 대표이사직을 역임했다. 1989년 건축사무소 이로재(履露齋)를 설립한 그는, 1990년 한국 건축의 새로운 담론을 요구하는 젊은 건축가 14명이 모여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4.3그룹’의 일원이었으며, 1994년 건축학도의 ‘총체적이고 근원적인 사고’의 함양을 위해 새로운 건축교육을 모색하고자 서울건축학교를 설립하는데 참가하기도 했다. 1998년 북런던대학(현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의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서울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가르쳤고 2017년 지금은 비엔나 공과대학 객원교수, 동아대학교 석좌교수로 있다. 20세기를 주도한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빈자의 미학’이라는 주제를 그의 건축의 중심에 두고 작업하면서, 김수근 문화상’,‘한국건축문화대상’ 등 여러 건축상을 수상하였다. 1999년 파주 출판도시의 코디네이터로 새로운 도시 건설을 지휘하던 그에게 2002년 미국건축가협회는 명예 펠로우십(Honorary Fellow of AIA)을 수여 받았으며, 건축가로는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하는‘2002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어‘건축가 승효상 전’을 가졌다. 미국과 일본 유럽 중국 각지에서 개인전 및 단체전을 가지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그의 건축 작업은 현재 중국 내의 왕성한 활동을 포함하여 아시아와 미국, 유럽에 걸쳐있다. 한국정부는 그의 한국문화예술에 대한 공헌을 기려 2007년 그에게 ‘대한민국예술문화상’을 수여했다. 200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활약한 그는 2014-2016년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를 역임, 서울의 정체성을 회복해 놓았다. 저서로는, 1996년 <빈자의 미학>을 시작으로 1999년 <지혜의 도시, 지혜의 건축>, 2004년 <건축, 사유의 기호(승효상이 만난 20세기 불멸의 건축물)>, 2005년 <건축이란 무엇인가 (우리 시대 건축가 열한명의 성찰과 사유)>, 2009년 지문 (땅 위에 새겨진 자연과 삶의 기록들, LANDSCRIPT)>, 2010년 <파주출판도시 컬처스케이프>, <노무현의 무덤 (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 2012년 <삼백육십도 이야기 (승효상의 클럽하우스 만들기, 360도의 퍼블릭 골프장 만들기)>, 2012년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모용공간 세트>, 2015년 <[공저]서울의 재발견 (도시인문학 강의, 시민이 행복해지려면 도시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2016년 <빈자의 미학 (20주년 개정판)>,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도시와 건축을 성찰하다)>, <승효상 도큐먼트> 등이 있다.


수상소감


먼저, 이 귀한 상을 주신 경암재단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제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부산에서 행하는 시상이서도 뜻 깊지만 제가 존경하던 송금조회장님의 절제와 근면의 일생으로 만드신 상을 받는다는 일은 하나의 상 너머의 큰 가치를 저에게 던져 줍니다. 다만, 제가 이 귀한 상을 받는 게 이 상의 권위를 해할까 염려스러울 뿐입니다.

특별히도 건축하는 자에게 상을 주신다는 사실이, 오늘날 한국건축의 현실을 둘러볼 때 무엇보다 고무적이고 감동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건축은 이 땅에서 오랫동안 이모저모로 왜곡되어 왔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 결과 조성한 오늘날의 우리 건축풍경이 몹시 초라한 게 사실이어서 더 그렇습니다. 건축은 우리 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시작된 가장 오래된 작업이며 우리의 삶을 담아 전해 내려오는 문화입니다. 또한 생명이 다하여 무너져 폐허가 된 건축이라도 그 건축이 담았던 삶의 흔적을 통해 옛 사람들의 정신과 그 시대의 정신을 되새기기도 하는 기억의 창고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우리를 만드는 게 그 건축이며, 건축은 우리의 존재 자체라고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건축은 지난 시대 경제적 가치에만 매몰되어 부동산으로 간주되기 일쑤였으며 어떤 경우에는 한낱 소비재로 취급되어 너무도 쉽게 짓고 또 순식간에 허물어 버리곤 합니다. 그리고는 부동산 가치를 좇아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정주하지 못하고 도시의 유목민처럼 사는 게 우리의 지금 모습입니다. 다시 하이데거 말을 빌리면, 그런 이들은 정주하지 못하여 존재하지 못하는 까닭에 결국 시를 쓰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한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건축을 도구로 삼아 주변보다 크고 화려하게 지은 게 우리 도시의 모습인 까닭에 대체적으로 우리 도시의 풍경은 늘 부조화 하고 같이 모여 사는 아름다운 모습을 외면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오히려 오래 전, 우리가 비록 가난했을 때였지만 우리의 사는 모습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건축은 늘 남을 배려하고 이웃과 나누었으며 도시는 자연과 조화하고 서로 모여 사는 공동체의 모습을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것을 기억하면 요즘의 건축은 어쩌면 옛 보다 훨씬 후퇴해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건축이 가져야 하는 가장 큰 가치가 공공성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설혹 개인의 돈으로 건축을 짓는다고 해도 그 사람은 그 건축에 대한 사용권만을 가질 뿐 소유권은 시민과 사회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건축으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의 삶이 지대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사회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게 건축인만큼, 그 건축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고 여겨왔습니다. 그래서 ‘빈자의 미학’이나 ‘지문’같은 말을 만들며 절제와 겸손, 공유와 공존에 대한 제 생각과 주장을, 제 건축작업을 통해서 혹은 강의와 글을 통해 늘 주장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설계를 의뢰하는 건축주들은 당신의 소유가 아니라는 제 주장을 몹시 부담스러워 하였고, 공정치 못한 기존의 건축 제도는 저의 건축방식을 냉소하였으며 심지어 대다수의 동료 건축가들조차 바른 건축에 따르는 고통을 외면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그들의 경계 밖에 있어야 했습니다. 경계 밖은 춥고 쓸쓸하며 어둡고 때로는 두렵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계 밖의 고독 속으로 스스로를 추방하는 자가 우리 사회와 시대를 조금 더 진보하게 하는 지식인이라고 오리엔탈리즘을 쓴 문화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격려합니다. 그 격려에 힘입어, 또한 그렇게 낙인이 찍혀 저는 늘 경계 밖에서 조심스럽게 제 건축을 다듬어 왔습니다. 그 태도가 가치 있다고 판결해주신 것일까요? 드디어 이 경암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상을 제가 이룬 성취의 대가로 여기지는 않겠습니다. 세상에 건축의 걸작을 만들었을 때의 그 건축가들의 나이가 대개는 6,70대후반이어서 마침 제가 이 나이대에 들어섭니다. 그러니 이 상은 저를 담금질하게 하는 분명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저는 주신 상금을 그 담금질 하는 곳에 오롯이 쓰겠습니다. 저의 작은 작업실이 외진 곳에 하나 있습니다. 하도 오래되고 헐어서 쓰기가 어려웠지만 여유가 없어서 주저했는데 이 상금으로 고쳐서 거기에 머물며 제 건축을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그럴 수 만 있다면 상금을 어디에 쓰는 것보다 주신 뜻에 맞게 쓰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귀한 상을 주셔서 깊이 거듭 감사 드립니다.
신독하고 정진하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