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ureate in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2014 인문사회부문 수상자 故 김재권
약력
서울대학교 중퇴(불어불문학과)
Dartmouth College 학사(불문학, 수학, 철학 전공)
Princeton University 박사(철학과)
Brown University 교수
University of Michigan 석좌교수
Cornell University 교수
Johns Hopkins University 교수
Brown University 석좌교수
수상이유
김재권 교수는 한국이 배출한 가장 자랑스러운 세계적인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김재권 교수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미시간 대학 등의 교수를 거쳐 1987년 이후 현재까지 브라운 대학 석좌교수(William Herbert Faunce Professor)로 재직 중이다. 김재권 교수는 일찍이 사건(event)과 수반(supervenience)의 개념을 분석하여 그 개념을 현대철학의 중요 개념으로 성립시키면서 이에 대한 표준 이론을 제시하였고 그러한 작업을 통해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해명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함으로써 현대의 형이상학, 심리철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학자로서의 위치를 확보하였다. 20세기 후반 한 동안 해당 학계를 풍미하였던 비환원적 물리주의의 이론적 기반이 마련되는 데에는 누구보다도 김재권 교수의 연구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김재권 교수는 스스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비환원적 물리주의의 이론적 취약점을 밝혀내고 환원적 물리주의의 가능성을 재삼 역설함으로써 다시 한 번 세계 심리철학계의 지형을 바꾸어 놓기까지 했다. 김재권 교수의 이러한 철학적 탐구의 여정은 20세기 후반에 축적된 인지과학과 뇌과학의 성과를 바탕 삼아 인간의 마음을 탐구해온 세계 학계의 노력을 가장 인상적으로 대변하는 것이라 평가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평가는 김재권 교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2015년 논문집의 출간 기획에 11명의 세계적 철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김재권 교수가 가르친 국, 내외의 많은 철학자들이 세계 철학계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그의 업적은 미래의 철학계에도 계속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김재권 교수에게 제10회 경암학술상을 수상하는 것은 본 학술상의 취지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수상소감
이 시상식이 부산에서 열린다는 사실은 저에게 매우 의미있는 일입니다. 저는 80여년전 대구에서 태어났고,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서울대학교 입학 시험을 치렀던 곳이 바로 부산입니다. 당시는 6.25가 한창이었고, 전쟁은 대학 입학 이후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의 첫 학기를 부산 북서쪽 어딘가의 언덕 위 막사와 같은 임시 교실에서 보냈습니다. 심지어 바닥재도 없는 교실은 발 아래 그대로 맨 흙이 드러나 있었고, 교수가 아무런 통지도 없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사실 "휴강"이라는 말이 바로 그럴 때 우리가 사용하던 말이었습니다.
지금 여기에는 6.25에 대해 조금이라도 기억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게 전쟁 경험은 심지어 지금까지도 제 자아를 형성하는 일부입니다. 저에게 대구는 당시 북한에 의해 포위되었던 그 긴 날들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고, 부산 역시 목조 막사에서 수업 시간들의 생생한 이미지들 없이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것들이 나쁜 기억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당시의 젊은 사람들은 희망과 포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열린 미래를 보고자 했고, 더 나은 삶에 대한 믿음과 의지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좌절에 굴복하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태도를 가졌습니다.
그것이 저로 하여금 미국에서의 학업을 추구하게끔 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의 2년 후, 저는 미국 뉴햄프셔의 다트머스 대학에 편입학하여 학업을 계속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처럼 불문학을 전공으로 하였지만 일년이 지난 후 철학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철학이 문학보다 이 세상과 진리에 대한 더 나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다트머스에서 학사 과정을 마친 후 프린스턴 대학 대학원으로 진학하였고, 그 이후로 미국 북동부의 대학들에서 가르치고 연구해 왔습니다.
철학에서의 저의 주된 연구 분야는 형이상학과 심리 철학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형이상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일반적, 근본적 본성에 대하여, 가령, 우리의 본성은 무엇이고, 우리가 이 세계의 다른 존재자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묻습니다. 이 세계는 근본적으로 오직 물리적일 뿐인가, 혹은 우리 선조들이 믿었던 것처럼, 인간 정신이나 영혼과 같은 본질적으로 비물질적인 것들을 포함하는가. 우리의 정신은 단지 생물학적, 물리적 현상일 뿐인가. 즉, 우리의 생각이나 바램, 혹은 믿음이나 희망 등이, 그저 우리 두뇌속의 전기적 작용에 지나지 않는가. 아니면 인간이란 영혼이나 마음과 같은 무언가 본질적으로 비물리적인 것인가
과학의 진보 특히 인지 뇌과학의 진보는 고통이나 감각 등의 인간의 의식 상태가 어떤 특정한 신경 상태로부터 나온다고, 혹은 그것들과 상관 관계에 있다고 말해줍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상관 관계가 아니라, 왜 그러한 특정 상관 관계가 얻어지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가. 백여년 전보다도 더 전에, 근대 심리학의 창시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책 <심리학의 원리들>의 가정에 의하면, 우리의 생각이나 여러 정신 활동은 뇌의 작용을 동반하며 또한 그것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관계는 우리가 경험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왜 그러한 관계가 얻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어렴풋이조차 알지 못한다. 사실 뇌가 왜 의식 현상 자체를 발생시키는지가 여전히 불가사의이다." 백여년이 지난 지금도 제임스를 절망케 했던 것, 즉, 어떻게 그리고 왜 의식이 뇌의 물리적작용으로부터 생겨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도 우리는 정신 현상과 신경 토대에 관한 여러 상관 관계의 "목록을 만드는" 단계에 있을뿐, 왜 다른 어떤 상관 관계가 아니라, 그러한 특정한 상관 관계가 얻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어렴풋이조차 알지 못합니다.
혹자는 의식이란 그저 두뇌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어할지 모릅니다. 혹은, 보다 더 명백한 사실로, 의식이란 주체 혹은 경험자의 상태이고, 그것은 "나의" 혹은 "당신의", 즉 인간의 상태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어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낳습니다. 여기서 나란 누구인가. 나란 무엇인가. 알다시피, 이것은 데카르트가 물었던 유명한 질문이며, 심리 철학은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 정체성, 즉 우리의 본질에 대한 질문입니다. 데카르트가 물었듯이, 나는 이제 내가 존재함을 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종류의 존재자인가. 나의 본성은 무엇인가
데카르트에 의하면, 나란 존재는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그래서 이중의 본성을 갖는 존재입니다. 데카르트에 대한 또다른 해석에 의하면, 오직 나의 마음 즉 영혼만이 진정한 나이고, 나의 몸은 그저 나란 존재가 잠시 거쳐가는 곳일 뿐입니다. 한편 현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물리주의 입장에 의하면, 나는 그저 나의 몸,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나의 두뇌일 뿐이고, 그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나라는 인간을 이루지 않습니다. 이러한 입장들 사이의 논쟁은 여전히 뜨겁게 진행중입니다.
그러므로 다음의 두 질문이 심리 철학의 기본적 질문입니다. 먼저, 왜 우리의 심리 상태는 두뇌 상태와 상관 관계를 맺는가. 왜 의식은 두뇌로부터 생겨나는가. 둘째, 나란 어떤 종류의 존재인가. 결국 나는 나의 마음 혹은 영혼과 동일한 것인가. 혹은 몸과 마음이 합성된 것이 나인가. 혹은 나는 그저 나의 몸 즉 두뇌일 뿐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우리는 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대답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고, 혹은 존재하더라도, 우리 이해의 한계를 넘어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질문들이 제가 지난 50여년 동안 추구해오고, 생각해왔던 질문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경암교육문화재단의 사명과 또 설립자이신 경암 송금조 선생의 숭고한 뜻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경암재단이 추구하는 바는 한국의 학술 진흥 나아가 세계의 학문과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실질적으로 이바지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