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ureate in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2013 인문사회부문 수상자 이영훈


약력


서울대학교 학사(경제학과)
서울대학교 석사(경제학과)
서울대학교 박사(경제학과)
한신대학교 경제학과 조교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부교수, 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한국고문서학회 회장
경제사학회 회장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


수상이유


이영훈 교수는 수량경제학의 방법론을 한국경제사에 적용하여 한국사학계가 하지 못했던 장기 수량 경제사에 독보적인 업적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료들을 발굴해 냄으로써 경제사 연구뿐만 아니라 한국사 연구의 한 단계 높은 도약을 가능하게 한 탁월한 연구자이다. 경암학술상 인문사회분야 심사위원들은 무엇보다도 이영훈 교수의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고려하여 이 교수를 수상자로 결정하였음을 분명히 밝힌다. 이 교수는 또한 학문 동반자 학파를 구성하여 양안과 호적을 포함한 대단히 방대한 사료를 DB로 구축함으로써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나아가 이 교수는 자신의 연구 업적을 국제학계에 소개하여 18-19세기 동아시아 경제사 전반에 관한 국제적 이해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교수의 연구는 그 외 여러 분야에 미치고 있으며 요즘에는 대한민국 현대사에도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현대사에 대한 그의 관심은 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전근대의 유산이 어떻게 현대와 연결되는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것이라고 판단된다. 즉 19세기까지의 전통사회와 달리 20세기는 서구에서 기원한 근대문명이 이식, 정착한 문명의 전환기였다. 근대문명의 본질은 사권의 주체로서의 개인의 성립인데 이영훈 교수는 그러한 개인의 초기적 성립을 15-19세기 조선왕조 시대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영훈 교수는 역사연구에서 사료의 엄중함을 일깨워주었다. 그동안 이영훈 교수의 연구결과에 대한 여러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 교수는 묵묵히 사료와 사실로 답을 할 뿐이었다. 이영훈 교수의 연구는 실로 한국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경암학술상 인문사회분야 심사위원들은 무엇보다도 이영훈 교수의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고려하여 이 교수를 수상자로 결정하였음을 분명히 밝힌다.


수상소감


한국경제사 연구자로서 저의 지난 35년은 새로운 자료에 대한 설렘과 그것을 만나는 흥분과 그것이 안겨준 충격의 연속이었습니다. 1983년 서울대학교 규장각실에서 1898년에 작성된 충남 7개 군현의 양안에서 대략 1/3의 농가에 '협호'라는 표기가 붙어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노비, 머슴, 고직, 농막사리와 같은 하층민들이었습니다. 며칠 뒤 저는 그 협호에 대한 주민의 기억을 채취하기 위해 혼자서 최초의 답사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에 비한다면 저희 같은 인문사회과학자들의 기여는 초라하기 짝이 없거나 오히려 혼란과 위선만 조장한 경우가 많아 무슨 명분이든 학술상은 아무래도 감당하기 힘든 실정입니다. 그렇지만 베푸신 큰 뜻을 새겨 이 사회와 문화의 발전에 돌 하나라도 보태는 심정으로 남은 과제를 종합, 정리함에 최선을 다해 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경암교육문화재단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아울러 원근 각처에서 이 자리에 왕림해 주셔서 저의 어쭙잖은 수상의 변을 경청해 주신 내빈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986년 저는 고 이수건 교수님을 모시고 15~16세기 양반가의 노비들을 연구하는 큰 행운을 누렸습니다. 저는 경북지방 양반가의 상속문서에 나타난 약 3,300명 노비들의 마을을 5만분의 1 지도에 그리다가 문득 안동으로, 봉화로 길을 떠나 하염없이 시골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1987년부터 각지의 양반가가 소장해 온 고문서가 활발하게 자료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1991년 고문서학회가 결성될 때 저는 창립멤버로서 열성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새로운 자료를 만나는 흥분으로 들뜬 세월이었습니다.

1997년 저는 전라도 영광의 신씨가, 영암의 문씨가, 해남의 윤씨가 등의 고문서에서 17세기 후반부터 시작하는 쌀값, 임금, 이자율, 두락당 지대량 등의 장기시계열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경제학자로서, 한국경제사 연구자로서 저의 인생에 또 하나의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1998년에는 경북 예천 용문면의 박씨가가 1830년 이래 4대에 걸쳐 써 내려온 일기를 입수하였습니다. 가정경제의 수입과 지출을 세밀하게 기록한 일기였습니다. 언제인가 꿈속에서 만난 적이 있는 자료였습니다. 그것이 제 눈앞에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저와 동료 연구자들의 공동연구는 2001년 『맛질의 농민들』, 2004년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새로운 자료를 만날 때마다 저의 마음은 격동하였습니다. 새로운 자료는 저에게 무엇이 역사이고 무엇이 환상인지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의 지난 35년은 비판과 논쟁의 연속이었습니다. 저는 많은 논쟁을 일으켰고, 또 지속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저는 자본주의맹아론과 광무개혁론을 비판하였으며, 총독부가 토지조사사업에서 농지를 마구잡이로 수탈했다는 통설을 부정하였습니다. 조선왕조를 노예제사회라고 한 미국의 제임스 팔래 교수와 생산적인 논쟁을 벌였으며, 전호의 재해석을 통해 고려와 조선의 토지제도사를 다시 쓰고자 했습니다. 저의 19세기까지 약 천 년에 이르는 노비, 호, 토지, 시장의 역사에 관한 연구는 자연스럽게 20세기 한국사의 이미지를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였습니다. 저는 10년 전부터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두고서도 발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은 '사적 자치의 주체'로서 개인을 기초 단위로 하고, 그 개인의 '자유'를 기초 이념으로 삼아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 점에서 대한민국의 성립은 19세기까지의 전통과 구분되는 '문명사의 대전환'을 의미합니다. 이 같은 저의 주장 역시 인문사회과학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새로운 자료에 대한 호기심이 지나친 나머지 너무 많은 일들을 벌여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창조적 글쓰기가 가능한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초조해지기도 합니다. 저의 학문은 아직 크게 미완입니다. 게다가 격한 논쟁으로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의 마음을 섭섭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무슨 학술상을 받으리라는 기대로 마음이 움직여 본 적은 없습니다.

몇 달 전 오래전부터 학문적 교유를 이어온 어느 교수님이 저의 연구실적 목록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그가 저를 무슨 박물관의 위원으로 추천하려는 모양이라고 짐작했습니다. 그랬는데 얼마 뒤 저를 경암학술상의 후보로 추천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으로 충분하며, 이미 큰 상을 받았다고 감읍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실제 수상의 영광까지 안게 되었습니다. 저를 추천하신 교수님과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해 올립니다. 경암교육문화재단이 어떠한 곳인지, 재단을 창립하신 송금조 이사장님이 어떠한 분인지 이번 기회에 자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현대 한국은 창의적인 기업가들이 일구어 온 것입니다. 송 이사장님은 평생에 걸쳐 창의적인 기업경영으로 국가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하셨으며, 근검절약으로 이룩하신 적지 않은 사재를 교육·문화의 공익사업에 희사하였습니다. 우리가 역사에 대해 절망하지 않은 것은 송 이사장님 같은 분이 이 사회에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한다면 저희 같은 인문사회과학자들의 기여는 초라하기 짝이 없거나 오히려 혼란과 위선만 조장한 경우가 많아 무슨 명분이든 학술상은 아무래도 감당하기 힘든 실정입니다. 그렇지만 베푸신 큰 뜻을 새겨 이 사회와 문화의 발전에 돌 하나라도 보태는 심정으로 남은 과제를 종합, 정리함에 최선을 다해 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경암교육문화재단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아울러 원근 각처에서 이 자리에 왕림해 주셔서 저의 어쭙잖은 수상의 변을 경청해 주신 내빈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