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ureate in Art
2010 예술부문 수상자 故 김지하
약력
서울대학교 미학과 학사
미국 사회연구대 명예박사
서강대학교 대학원 명예박사
시인지 첫 등단
계간 그물코 대표
명지대 인문대학 문예창작과 석좌교수
초대 율려학회회장
“세계생명문화포럼-경기2003” 공동추진위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
영남대 교양학부 석좌교수
명지대 교양학부 석좌교수
동국대 생태환경연구센터 석좌교수
원광대 원불교학과 석좌교수
수상이유
김지하(본명 김영일) 선생은 현대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가운데 하나다. 지금까지 그는 수많은 시를 썼고 다수의 시집을 발간하였으며 그러한 공적에 따라 그간 국내외에서 문학상을 다수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무엇보다 시인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것이다. 이에 경함학술상 심사위원회는 시인이자 문화예술인, 사상가, 그리고 미학자인 김지하 교수를 예술부분의 제6회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하지만 김지하 시인을 단순한 참여 시인의 범주 안에 가둘 수는 없다. 그는 시인이면서도 예술과 문화 전반에 걸쳐 박식한 지식과 단단한 내공으로 무장한 르네상스인의 전형으로서, 시대와 사회의 담론을 개척하고 주도한 인물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시인이라기보다 오히려 사상가에 더 가깝다. 그가 한국의 전통사상을 부단히 재발견, 재해석하면서 생명사상이나 환경 철학의 정립을 통해 근대 서구문명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사상가 김지하의 특장(特長)은 한 자리에만 머물러 있거나 익숙한 것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정치적으로 김지하 시인이 보수와 진보의 낡은 틀을 벗어나라고 호소하는 것도 그가 시대를 앞서가는 시대정신을 남달리 갖추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시인 김지하를 제6회 경암학술상 예술부문 수상자로 선정하는 더 큰 이유는 그가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보기 드문 미학자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시, 인생, 및 사상의 저변에서 작동하는 원동력이 바로 그의 미학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김지하 시인은 시 부문뿐만 아니라 예술 문화 전반에서 시 언어로 창조적 예술 담론을 이끌었다. 또한 그는 예술가로서 사회 참여자 작가로 출발하여, 생명 사상을 거쳐 21세기에는 환경 문제까지 시 세계로 확장시켜 한국 사회에 끊임없이 예술의 언어로 세상의 공존을 일깨워 주었다. 민족미학에서 출발한 그의 미학이론이 최근 이른바 ‘흰 그늘의 미학’으로 귀착되는 것은 미학자 김지하 선생이 미학 자체에 대해 평생 탐색을 계속해 왔다는 사실을 방증(傍證)하는 것이다.이에 경함학술상 심사위원회는 시인이자 문화예술인, 사상가, 그리고 미학자인 김지하 교수를 예술부분의 제6회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수상소감
수상에 감사합니다.
넷째 딸 용옥이 그 아이와 함께 죽고 인양되는 곳입니다. 박경리 문학의 위대한 테마인 수왕사(水王史), 즉 여성주도의 새로운 문명사가 물속으로부터 도출해 올라오면서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목을 저는‘흰 그늘과 화엄’이란 글에서 ‘구령적-출탁(龜靈跡-.啄)문학’이라고 불렀습니다.
거북신령의 기운 즉‘개벽문학성’이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거대한 새 시대의 개막을 박경리 선생이 암시한 장소가 부산 앞바다요, 남쪽이라고 봅니다.
시상식이 열리고 동백섬의 풍수가 또한 다름 아닌 ‘영구망해(靈龜望海)’ 즉 “신령한 거북이 먼 바다를 바라본다.”라고 들었습니다. 같은 뜻이겠습니다.
박경리 문학의 예언에 따르면 그 바다는 바로 ‘토지’에 상세히 전개되고 있는 “대화엄개벽” 그것이었습니다.
상을 받는 제 마음이 소슬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 내 개인만의 일이겠습니까! 국운(國運)이요 동아시아·태평양 신문명의 미래에 대한 암시와 연결될 것이라고 봅니다.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수상에 감사합니다.
한마디만 더 하자면, 저는 상당히 바쁜 사람입니다.‘빨갱이’가 되었다‘반동분자’가 되었다, 왔다 갔다 아주 바쁩니다. 전화고, 신문이고 언론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좌익, 우익을 왔다 갔다 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경암상이 좌익도 우익도 아니면서 좌·우를 다 포함할 수 있는 어떤 자리를 나에게 이 세상에서 처음 제공하였습니다.
지금 나는 뼈가 부러져 목발을 두 개 짚고 다닙니다. 한쪽만 짚고 다니면 좋을 텐데 양쪽 두 개를 짚으며 ‘빨갱이’ ‘반동분자’ ‘빨갱이’ ‘반동분자’가 되어, 양쪽으로 왔다 갔다 절룩절룩 걷습니다. 우리나라의 운명이니, 지식인들의 저주와 같은 운명이니 할 수 없이 받아들입니다만, 이렇게 절룩이며 나왔을 때 송금조 선생께서 기차역으로 휠체어를 보내 주셨습니다. 휠체어를 타면서 제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 상이 무슨 뜻을 갖는가” 아무래도 좌로 우로 찌끄덩거리는 목발보다는 휠체어가 훨씬 안전하고 원만하고 그 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작업하시오 하는 뜻이지 싶습니다. 영상물에서 조동일 교수도 너무 바삐 다니지 말고 이제 좀 넉넉히 가거라 하셨는데 그게 과연 될까요.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께서 조금 정리해 주시면 그렇게 해 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