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ureate in Art

2008 예술부문 수상자 윤광조 


약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공예학부 학사
일본 당진(唐津) 유학
동아공예대전 심사위원



수상이유


분청사기 도예가 윤광조 작가는 일생 전업작가로서 예술활동에 전념하며, 전통 도자의 현대적 변형을 통하여 전통 한국 도예의 재발견과 그 세계화에 기여한 독창적인 예술인이다. 윤광조의 독창적인 도예작업은 2004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의 작가’로 지명함으로써 국내에서 나름대로 평가되었다. 미국의 유수 공공미술관인 필라델피아 미술관(2003년) 및 시애틀 미술관(2004년)에서 개인 초대전을 열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곳에 작품을 수장한 것은 물론이다. 이밖에 영국 런던의 대영미술관, 호주 캔버라의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벨기에 브뤼셀의 마리옹 로얄 미술관에도 그의 작품은 현재 영구 소장되어있다. 이런 점에서 윤광조의 분청사기는 대한민국의 공예수준은 물론 문화수준 전반까지 전 세계에 자랑하고 있는 귀중한 우리의 예술적 성취라고 볼 수 있다. 그의 한국 도예의 재발견과 그 세계화 노력은 앞으로도 우리 예술문화의 발전을 위해 매우 귀한 촉매제이자 도약대가 될 것이다. 그는 약관(弱冠)시절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최순우 선생과 만나 도예에 눈을 떴고, 훗날 화가 장욱진과의 조우와 교류를 통하여 ‘단순함의 밀도’를 익혔다. 그는 현재 경북 경주시 안강읍 급월당, 일명 바람골에 은거하면서 오직 작품에만 진력하며 승부하고 있다. 윤광조 작가는 이러한 분청의 가치를 일찍부터 인식하여 1960년대 한국 전통문화의 위기상황 속에서 한국적 전통문화의 보고로서 조선 중기 분청사기에 주목한다. 1970년대까지 전통적인 분청의 재현과 계승에 전념하던 윤광조는 1980년대에 들어와 그의 도예생활의 일대 전환을 꾀한다. 그는 조선시대 분청예술과 불교 선종과의 각별한 관계를 깨달은 다음 1984년에 전라도 송광사를 찾아 배움을 얻기도 하였다. 이후 스스로 사색하며 진리에 도달하려는 선종의 가르침은 그의 작업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는데, 바로 그 결과가 그가 평생의 업으로 선택한 분청사기의 현대화 작업이다. 1980년대 후반 윤광조는 물레를 과감히 버리고 석고틀 작업이나 판 작업, 그리고 코일링(타레쌓기) 작업으로 전환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물레를 너무 능숙하게 다루다보니 물레를 다루는 기술이 예술을 앞지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 이후 그는 석고틀 작업마저 청산했다. 이로써 그는 보다 자유롭고 자율적인 도예 창작 세계로 진입한 것 이다. 물레를 없앤 다음 윤광조의 도자기는 삼각이나 사각기둥, 납작한 타원형으로 다양해졌으며, 그만큼 넓은 평면을 갖게 되었다. 곡면이 아닌 평면 위에서 윤광조는 작품의 회화적 특성을 맘껏 발휘했다. 윤광조가 시도한 전통도자의 현대적 변형은 도자의 고유 속성인 실용성과 기능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에서 더욱 빛난다. 한국 도예사에서 ‘생활용기’라는 개념을 최초로 사용한 이가 바로 윤광조였다. 윤광조의 독창적인 도예작업은 2004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의 작가’로 지명함으로써 국내에서 나름대로 평가되었다. 미국의 유수 공공미술관인 필라델피아 미술관(2003년) 및 시애틀 미술관(2004년)에서 개인 초대전을 열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곳에 작품을 수장한 것은 물론이다. 이밖에 영국 런던의 대영미술관, 호주 캔버라의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벨기에 브뤼셀의 마리옹 로얄 미술관에도 그의 작품은 현재 영구 소장되어있다. 이런 점에서 윤광조의 분청사기는 대한민국의 공예수준은 물론 문화수준 전반까지 전 세계에 자랑하고 있는 귀중한 우리의 예술적 성취라고 볼 수 있다. 그의 한국 도예의 재발견과 그 세계화 노력은 앞으로도 우리 예술문화의 발전을 위해 매우 귀한 촉매제이자 도약대가 될 것이다. 그는 약관(弱冠)시절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최순우 선생과 만나 도예에 눈을 떴고, 훗날 화가 장욱진과의 조우와 교류를 통하여 ‘단순함의 밀도’를 익혔다. 그는 현재 경북 경주시 안강읍 급월당, 일명 바람골에 은거하면서 오직 작품에만 진력하며 승부하고 있다.

수상소감


감사합니다. 이런 귀한 상은 저에게는 과분하고 너무나 영광스럽습니다. 또 이 상은 저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열악한 여건 속에서 외로운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든 전업 작가들에게도 큰 격려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 도예문화는 매우 찬란하여 지금까지도 그 가치를 전 세계인들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도예는 그 길을 잃고 있습니다. 다른 분야와 달리, 일반인들의 현대도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개인 작업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경제력과 지속적인 노동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도예뿐만 아니라, 회화, 조각, 건축, 음악, 문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두루 걸쳐 있는 화두는 “전통과 현대성”입니다. 전통이란 무엇인가요. 전통은 과거에 있었던 박제된 형식이 아닙니다. 전통은 살아 있어야 합니다. 창조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문화라는 것은 풍토를 어머니로, 시간을 아버지로 하여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현대성은 서구화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성은 시간의 문제이지, 지역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구의 것과 형식이 비슷하다고 해서 세계화가 아닙니다.


작품이란 한 인간의 ‘고뇌하는 순수’와 ‘노동의 땀’이 독자적인 조형언어로 표현되어 여러 사람과의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품은 깜짝 놀라게 하는 아이디어나 지식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순수와 고독과 열정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미쳐야 한다. 그러나 미치면 안 된다.”, “머리와 가슴은 구름 위에, 발은 땅을 굳게 딛고 있어야 한다.” 이 지극히 상반된, 모순덩어리들을 동시에 지니고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한 사람이 예술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제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스러움, 자연스러움”입니다. 새로운 조형인데 낯설지 않은 것, 우연과 필연, 대비와 조화의 교차, 이러한 것들을 통해 자유스러움, 자연스러움을 공감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화두로 꾸준히 공부해 나아가면 언젠가 자유와 자연을 그대로 드러낼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것은 이러한 저의 삶과 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아껴 주시는 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저의 수상소감을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