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아무런 쓸모없는 자갈밭에서 돌멩이를 걷어내어 옥답을 일구는 과정과 다름없었다. 이런 나에게 소설가 요산(樂山) 김정한 선생은 '바위밭을 경작한 사람'이란 뜻으로 경암(耕岩)이라는 아호를 지어주었다. 역경 속에서도 누구를 탓하지 않고 묵묵히 쟁기를 끄는 황소처럼, 우직하고 고지식하게 정말로 열심히 살았다. 오늘의 결실은 그렇게 해서 일궈놓은 옥답의 열매들이다.
오늘의 성취가 나의 생활신조인 근면검약의 결과였지만, 그 성취가 내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었다. 주변의 따뜻한 도움도 있었고, 때로는 운도 따랐다. 뜻하지 않은 난관에 부딪혀 허우적거리며 상심했을 때, 진정어린 격려를 아끼지 않은 분들이 있었다. 혼돈 속에서 갈 길을 잃고 방황할 때, 고삐를 다시 매도록 따끔한 충고와 채찍질을 주신 분들도 없지 않았다. 내게 경암이라는 아호를 지어준 요산 김정한 선생은 그 중의 한 분이다. 부산 토박이로서 국내 문단의 큰별로 남은 요산 선생은 미욱한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특히 경암이라는 아호는 그로부터 받은 가장 큰 가르침이자 선물이었다.
나는 광복 직후 이십대 초반의 나이에 창업한 약품도매상을 시작으로 미곡상, 정미소, 양조장, 플라스틱제조공장, 봉제공장, 수산물가공공장, 주방기기공장, 극장 등 실로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험난한 고비를 넘고 좌절을 겪으며 오늘의 성취를 이루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토록 다양한 분야에 눈길을 돌릴 수 있었는지 스스로 의아해할 정도다. 밭이랑을 너무 자주 바꾼 셈이었지만, 당시로서는 내 나름대로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나와는 거의 동시대의 기업가로서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견인했던 삼성의 이병철 회장과 현대의 정주영 회장에 비교하면, 나의 이런 모습들이 이 고랑에서 저 고랑으로 힘들게 옮겨가는 한 마리 개미의 종종걸음으로 비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 삶에 있어서 크게 후회하거나 미련이 남은 것은 아니다.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옥토를 일구었다는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는 확신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이제 인생의 만년에 접어든 요즘, 나는 대부분의 사업을 정리하고 교육문화보국의 일념으로 설립한 학교법인 태양학원과 경암교육문화재단을 통해, 우리나라의 교육과 문화 증진을 위해 마지막 남은 힘을 쏟고 있다. 교육과 문화의 뒷받침 없이는 사회와 국가의 진정한 발전을 도모하기 어렵다는 평소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서다.